다음 논쟁이 있었던 무렵의 저술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재상 박유가 아뢰기를 “청컨대 여러 신하, 관료로 하여금 여러 처를 두게 하되, 품위에 따라 그 수를 점차 줄이도록 하여 보통사람에 이르러서는 1처 1첩을 둘 수 있도록 하며, 여러 처에서 낳은 아들도 역시 본처가 낳은 아들처럼 벼슬을 할 수 있게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연등회 날 저녁 박유가 왕의 행차를 호위하여 따라갔는데, 어떤 노파가 그를 손가락질하면서 “첩을 두고자 요청한 자가 저 늙은이다.”라고 하였다. 듣는 사람들이 서로 전하여 서로 가리키니 무서워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건의를 정지하고, 결국 시행하지 못하였다.
- ①김부식이 진삼국사기표를 지었다.
- ②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찬술하였다.
- ③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다.
- ④정인지가 훈민정음해례 서문을 지었다.
정답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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