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인용문에서 밑줄 친 ‘왕’은 누구인가?
나라 안의 여러 주와 군에서 공물과 부세를 바치지 않아 나라의 창고가 텅 비고 나라의 씀씀이가 궁핍하게 되었다. 왕이 사자를 보내 조세를 독촉하니, 이로 인하여 곳곳에서 도적들이 일어났다. 이때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를 근거로 반란을 일으키자, 왕이 나마(奈麻) 영기에게 명하여 붙잡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 ①경애왕
- ②선덕여왕
- ③진덕여왕
- ④진성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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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일으킨 봉기는 진성여왕 재위 중인 889년에 발생했다. 조세 독촉과 농민 봉기가 이어진 상황도 신라 하대의 혼란에 해당한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경애왕은 후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큰 위기를 겪던 시기의 군주다. 원종과 애노의 봉기가 일어난 889년보다 뒤에 즉위했다.
- ② 선덕여왕은 신라 중대 이전의 군주로,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에 대응하던 시기와 관련된다. 사벌주 봉기 시점과 맞지 않는다.
- ③ 진덕여왕은 나당 연합을 추진하던 시기의 군주다. 원종과 애노의 봉기가 일어난 신라 하대보다 훨씬 앞선다.
- ④ 진성여왕 재위 중 과도한 조세 독촉에 반발한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했다. 지문의 왕에 해당한다.
관련 개념
신라 하대에는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세금과 공물의 수취가 어려워졌다.
진성여왕 때인 889년,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한 사건은 농민 반란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지방에서는 호족이 성장하고 각지의 반란이 이어져 후삼국 성립으로 연결되었다.
진성여왕 때인 889년,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한 사건은 농민 반란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지방에서는 호족이 성장하고 각지의 반란이 이어져 후삼국 성립으로 연결되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