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리 등용제도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무과 예비 시험으로 소과가 있었다.
- ②잡과는 분야별로 합격 정원이 있었다.
- ③과거, 음서, 천거를 통해 관리를 선발하였다.
- ④권력의 집중과 부정을 막기 위해 상피제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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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① — 소과는 생원·진사를 뽑는 문과 계열의 예비 시험으로, 무과의 예비 시험이 아니었다. 무과는 초시·복시·전시의 단계로 치러졌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소과는 문과 응시 자격과 연결되는 생원시·진사시를 가리킨다. 무과의 시험 단계에 소과를 두었다는 설명은 잘못이다.
- ② 잡과는 역과·의과·음양과·율과 등 전문 분야별로 실시되었고, 각 분야에 합격 정원이 정해져 있었다.
- ③ 관리를 뽑는 경로에는 시험 성적에 따른 과거 외에도 가문의 공로에 따른 음서와 인물 추천에 따른 천거가 있었다.
- ④ 상피제는 가까운 친족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같은 관청 또는 관할 지역에서 함께 근무하지 못하게 하여 권력 집중과 부정을 막으려는 제도였다.
관련 개념
조선의 과거는 문과·무과·잡과로 나뉘며,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는 문과 계열의 예비 단계에 해당한다.
무과는 무예와 병학 등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초시·복시·전시를 거쳐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과거 외의 등용 경로인 음서와 천거도 있었으며, 임용 뒤에는 상피제 등으로 친족 간 결탁을 제한하였다.
무과는 무예와 병학 등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초시·복시·전시를 거쳐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과거 외의 등용 경로인 음서와 천거도 있었으며, 임용 뒤에는 상피제 등으로 친족 간 결탁을 제한하였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