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17년 7번]

밑줄 친 인물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가(이) 말하기를, “신라는 사람을 쓰는 데 신분을 따져서 그 족속이 아니면 뛰어난 재주와 큰 공이 있어도 한계를 넘지 못한다.”라고 하고, 몰래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갔다.

- 『삼국사기』 -

국사
  1. ①승려로서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였다.
  2. ②육두품 출신으로 골품제도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3. ③왕자 출신으로 나중에 태봉을 세웠다.
  4. ④해도 출신으로 귀국 후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② — 신분 때문에 관직 진출에 한계를 느껴 당나라로 건너간 인물은 육두품 출신 최치원이다. 그는 귀국 후에도 골품제의 제약을 겪으며 시무십여조를 올려 개혁을 건의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선종 유학: 최치원은 승려가 아니라 당나라의 과거에 급제해 관료로 활동한 문인이다.
  • ② 육두품과 골품제: 최치원은 육두품 출신으로, 능력과 공로보다 혈통을 앞세우는 신라의 신분 질서에 불만을 품었다.
  • ③ 태봉 건국: 태봉을 세운 인물은 궁예이다. 당나라로 건너간 최치원의 행적과는 관련이 없다.
  • ④ 청해진 설치: 청해진을 설치한 인물은 장보고이다. 이는 최치원의 골품제 비판과 구별해야 한다.

관련 개념

최치원은 신라 말 육두품 출신의 학자로,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알렸다.
귀국 뒤 시무십여조를 올려 정치 개혁을 제안했으나, 골품제에 묶인 신라 사회에서 뜻을 펴기 어려웠다.
골품제는 혈통에 따라 관등과 사회적 지위의 상한을 정했으므로, 육두품 지식인들의 불만이 커지는 배경이 되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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