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경제제도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금성(경주)에 동시, 서시, 남시의 시장이 있었다.
- ②신문왕 때 실시된 녹읍 제도는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 ③성덕왕 때 관료전 제도를 폐지하고 정전 제도를 실시하였다.
- ④주전관을 두고 해동통보, 동국통보를 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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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① — 통일신라의 수도 금성에는 상업 활동을 관리하기 위해 동시 외에 서시와 남시도 설치되었다. 관료전·녹읍·정전의 시행 시기와 고려의 화폐 발행 시기를 구별하면 된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금성의 시장: 동시는 일찍부터 운영되었고, 통일신라에 서시와 남시가 추가로 설치되어 수도의 상업 활동을 뒷받침하였다.
- ② 신문왕의 녹읍: 신문왕은 녹읍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 폐지하였다. 이후 경덕왕 때 녹읍이 다시 지급되었으므로 지속 시기 설명도 맞지 않는다.
- ③ 성덕왕의 토지 제도: 성덕왕은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관료전은 신문왕 때 지급되었으며, 성덕왕 때 폐지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 ④ 주전관과 화폐: 주전관에서 해동통보·동국통보 등을 발행한 것은 고려 숙종 때의 일이다. 통일신라의 경제 정책으로 볼 수 없다.
관련 개념
통일신라에서는 왕권 강화와 관료 통제를 위해 신문왕 때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성덕왕 때에는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으나, 경덕왕 때 녹읍이 부활하였다.
수도의 시장 확충은 통일신라의 상업 발달을 보여 주며, 해동통보와 동국통보는 고려의 화폐이다.
성덕왕 때에는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으나, 경덕왕 때 녹읍이 부활하였다.
수도의 시장 확충은 통일신라의 상업 발달을 보여 주며, 해동통보와 동국통보는 고려의 화폐이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