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통치 체제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삼국 초기에 연맹을 구성한 각 부의 지배자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통치하였다.
- ②백제는 좌평을 비롯한 16등급의 관리가 있어 나랏일을 맡아보았다.
- ③관등제와 관직 체계의 운영은 신분제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 ④신라에서 집사부 시중은 귀족회의를 주관하며 왕권을 견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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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신라의 귀족회의인 화백회의를 주관하고 왕권을 견제한 인물은 상대등이다. 집사부 시중은 왕명을 받들어 행정을 총괄했으므로 이를 귀족회의의 의장으로 설명한 부분이 틀리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초기 각 부의 지배자는 연맹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영역에 대한 통치권을 상당 부분 유지했다.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독자성은 점차 약해졌다.
- ② 백제의 관등은 좌평을 최고 등급으로 하는 16등급으로 구성되었다. 관리들은 관등에 따라 국가 업무를 맡았다.
- ③ 삼국에서는 출신 신분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관등과 맡을 수 있는 관직에 제한이 있었다. 따라서 관료 조직의 운영은 신분제의 영향을 받았다.
- ④ 집사부 시중은 왕을 보좌하며 행정 실무를 총괄했다. 귀족회의를 주관하고 왕권을 견제한 직책은 시중이 아니라 상대등이다.
관련 개념
삼국은 여러 부가 결합한 초기 연맹 체제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 체제로 발전했다.
중앙 집권 과정에서 관등과 관직이 정비되었지만, 관료의 승진과 임용에는 신분에 따른 제한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상대등이 귀족회의인 화백회의와 관련된 귀족의 대표였고, 집사부 시중은 왕권을 뒷받침하는 행정 책임자였다.
중앙 집권 과정에서 관등과 관직이 정비되었지만, 관료의 승진과 임용에는 신분에 따른 제한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상대등이 귀족회의인 화백회의와 관련된 귀족의 대표였고, 집사부 시중은 왕권을 뒷받침하는 행정 책임자였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