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20년 19번]

밑줄 친 ‘이 기구’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선조 26년(1593) 국왕의 행차가 서울로 돌아왔으나 성 안은 타다 남은 건물 잔해와 시체로 가득했다. 선조는 이 기구를 설치하여 군사를 훈련시키라고 명하였다. 이에 유성룡이 주도하여 명나라의 기효신서를 참고하여 훈련법을 습득하고 조직을 갖추었다.

국사
  1. ①군병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였다.
  2. ②정토군이 편성되어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3. ③부대 편성은 삼수군인 포수, 사수, 살수로 하였다.
  4. ④서울에 내영, 수원에 외영을 두어 국왕의 친위를 담당하였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③ — 임진왜란 중 설치된 기구는 훈련도감이다. 훈련도감은 명나라의 병법을 받아들여 포수·사수·살수로 이루어진 삼수병을 양성하였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자비 부담은 훈련도감 군병의 특징이 아니다. 훈련도감의 군병은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었다.
  • ② 정토군은 여진에 대비한 별도의 군사 편제와 관련된다. 왜란 중 수도 방위를 위해 설치된 훈련도감의 편제는 삼수병이다.
  • ③ 삼수병은 총을 쓰는 포수, 활을 쓰는 사수, 창과 칼을 쓰는 살수로 구성되므로 훈련도감의 편제에 해당한다.
  • ④ 내영·외영을 둔 국왕 친위 부대는 정조 때의 장용영이다. 훈련도감과는 설치 시기와 조직 목적이 다르다.

관련 개념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때 설치된 중앙 군영이다.
명나라의 《기효신서》를 참고해 화기와 활, 근접 무기를 함께 운용하는 삼수병 체제를 갖추었다.
군병에게 급료를 지급하며 상시 훈련시켰고, 이후 조선 후기 중앙 군사 조직의 핵심이 되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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