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친 ‘이 기구’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선조 26년(1593) 국왕의 행차가 서울로 돌아왔으나 성 안은 타다 남은 건물 잔해와 시체로 가득했다. 선조는 이 기구를 설치하여 군사를 훈련시키라고 명하였다. 이에 유성룡이 주도하여 명나라의 기효신서를 참고하여 훈련법을 습득하고 조직을 갖추었다.
- ①군병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였다.
- ②정토군이 편성되어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 ③부대 편성은 삼수군인 포수, 사수, 살수로 하였다.
- ④서울에 내영, 수원에 외영을 두어 국왕의 친위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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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③ — 임진왜란 중 설치된 기구는 훈련도감이다. 훈련도감은 명나라의 병법을 받아들여 포수·사수·살수로 이루어진 삼수병을 양성하였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자비 부담은 훈련도감 군병의 특징이 아니다. 훈련도감의 군병은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었다.
- ② 정토군은 여진에 대비한 별도의 군사 편제와 관련된다. 왜란 중 수도 방위를 위해 설치된 훈련도감의 편제는 삼수병이다.
- ③ 삼수병은 총을 쓰는 포수, 활을 쓰는 사수, 창과 칼을 쓰는 살수로 구성되므로 훈련도감의 편제에 해당한다.
- ④ 내영·외영을 둔 국왕 친위 부대는 정조 때의 장용영이다. 훈련도감과는 설치 시기와 조직 목적이 다르다.
관련 개념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때 설치된 중앙 군영이다.
명나라의 《기효신서》를 참고해 화기와 활, 근접 무기를 함께 운용하는 삼수병 체제를 갖추었다.
군병에게 급료를 지급하며 상시 훈련시켰고, 이후 조선 후기 중앙 군사 조직의 핵심이 되었다.
명나라의 《기효신서》를 참고해 화기와 활, 근접 무기를 함께 운용하는 삼수병 체제를 갖추었다.
군병에게 급료를 지급하며 상시 훈련시켰고, 이후 조선 후기 중앙 군사 조직의 핵심이 되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