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골품제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혈연에 따른 폐쇄적인 신분제도였다.
- ②관등의 상한선이 골품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 ③골품은 가옥 규모나 수레 종류 등을 규제하였다.
- ④왕은 진골에서 나왔고, 중앙 관서의 장관은 6두품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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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중앙 관서의 장관은 주로 진골에게 허용된 관직이었다. 6두품은 관등 승진에 한계가 있어 장관직에 오를 수 없었으므로, 진골 왕위 계승과 6두품 장관 취임을 함께 서술한 내용이 옳지 않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혈연 중심 신분: 골품은 태어난 가계에 따라 정해지고 개인의 능력으로 바꾸기 어려웠으므로 폐쇄적인 성격을 띠었다.
- ② 관등 상한: 골품마다 오를 수 있는 관등의 범위가 달랐다. 특히 6두품은 아찬보다 높은 관등으로 승진할 수 없었다.
- ③ 생활 규제: 골품에 따른 차등은 관직에 그치지 않고 집의 규모와 장식, 사용할 수 있는 수레 등 일상생활에도 적용되었다.
- ④ 진골 왕위·장관직: 왕이 진골에서 나온다는 부분은 맞지만, 중앙 관서의 장관직은 진골이 맡았다. 6두품은 신분에 따른 승진 제한 때문에 그 직위에 오를 수 없었다.
관련 개념
신라의 골품제는 왕경 귀족의 혈통을 기준으로 지위를 구분한 신분 질서이다.
진골은 왕위 계승과 최고위 관직 진출이 가능했지만, 6두품은 아찬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관등과 관직뿐 아니라 주거·복식·수레 등 생활 영역에도 골품별 제한이 있었다.
진골은 왕위 계승과 최고위 관직 진출이 가능했지만, 6두품은 아찬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관등과 관직뿐 아니라 주거·복식·수레 등 생활 영역에도 골품별 제한이 있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