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농민ㆍ천민의 봉기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만적이 신분 차별에 항거하려 하였다.
- ②사벌주(상주)에서 원종과 애노 등이 봉기하여 위세를 떨쳤다.
- ③김사미와 효심의 무리는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 ④망이ㆍ망소이 무리를 회유하기 위하여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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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 — 원종과 애노의 봉기는 신라 말 사벌주에서 일어났다. 고려 후기 농민·천민의 저항을 묻는 문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옳지 않은 설명이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만적은 최충헌의 사노비로, 신분 해방을 주장하며 노비 봉기를 모의하였다. 고려 후기의 천민 저항에 해당한다.
- ② 원종·애노의 봉기는 신라 진성여왕 때 사벌주에서 일어났다. 고려 후기에 발생한 봉기로 분류할 수 없다.
- ③ 김사미는 운문, 효심은 초전에서 세력을 모았다. 두 지역 모두 경상도에 속하며 고려 후기 농민 봉기의 주요 무대였다.
- ④ 고려 정부는 망이·망소이의 봉기를 달래기 위해 이들의 근거지인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켰다.
관련 개념
고려 후기에는 무신 집권으로 농민에 대한 수탈이 심해지면서 여러 지역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망이·망소이와 김사미·효심의 활동은 당시 농민 저항의 대표 사례다.
천민 저항의 사례인 만적의 모의와 신라 말 원종·애노의 봉기는 시대를 구별해 기억해야 한다.
망이·망소이와 김사미·효심의 활동은 당시 농민 저항의 대표 사례다.
천민 저항의 사례인 만적의 모의와 신라 말 원종·애노의 봉기는 시대를 구별해 기억해야 한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