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뿔은 벌써 소의 무기는 아니다. 소의 뿔은 오직 안경의 재료일 따름이다. 소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로 위주니까 소에게는 무기가 필요 없다. 소의 뿔은 오직 동물학자를 위한 ㉠ 표지이다. ‘야우(野牛) 시대에는 이것으로 적을 공격한 일도 있습니다.’ 하는, 마치 폐병의 가슴에 달린 훈장처럼 그 추억이 애상적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 더 한층 ㉡ 겸허하다. 이 애상적인 뿔이 나를 받을 리 없으니 나는 마음 놓고 그 곁 풀밭에 가 누워서 우선 소를 본다.
소는 잠시 ㉢ 반추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자인가보다. 내 생명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하였으리라. 그러나 오 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한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 권태에 지질렸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食物)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半消化物)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오락하는 체해 보임이리오.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해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를 좀 생각해 본다.
- 이상, ‘권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