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장에 쓰인 부호가 한글 맞춤법에 맞지 않는 것은?
- ①어머님께 말했다가 ― 아니, 말씀드렸다가 ― 꾸중만 들었다.
- ②낱말(單語)은 띄어 쓰되, 토씨(助詞)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 ③시골 외삼촌댁에는 개·고양이, 오리·닭 등의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 ④관련 법령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2010. 2. 25.부터 새로운 제도가 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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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2009-07-25 · 책형 봉 · 20문항 · 출처: 인사혁신처 공개 기출(공공데이터포털, 이용허락 제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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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별로 북적대지 않는 가게인데도 사람들은 북적댄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작은 가게에 손님이 세 명뿐인 시간이 전체 영업시간의 75 %, 손님이 열 명 있는 시간이 25 %라고 하자. 그곳이 작은 가게여서 손님이 10명 있으면 붐빈다고 생각하고, 3명뿐이면 손님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손님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비율로 보아 13명 가운데 10명꼴로 붐비는 시간에 가게에 있었으므로 손님의 77 %가 ‘이 가게는 붐빈다.’는 주장을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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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 댁이 잘 돼야지. 그 댁이 잘 돼 자손이 창성하구 형세가 늘어나구 해야 우리두 잘 되지. ( ㉠ )구.”(나) 이런 일이란 떡 먹은 입 쓰다듬듯 하고 ( ㉡ ) 해도 잠간 사이에 소문이 파다해지게 마련인데 횡재를 한 당사자가 항아 장사 물건 자랑하듯 하니 아는 데는 똥파리요 귀가 초롱같이 밝은 서리청의 이속(吏屬)들이 단 하루를 모르고 지나칠 리가 없었다.(다) ( ㉢ )던가. 살리타(撒禮塔)가 죽었다는 소식은 곧장 강화 조정에 전해지고 며칠 후 처인성에는 일군의 병사들이 당도했다. 강화에서 보낸 병사들이었다. 김윤후는 병사들로부터 왕이 부른다는 전갈을 받았다.(라) ‘( ㉣ )’는 인색하고 욕심 많은 사람을 빗댄 말이고, ‘산지기 눈치 보니, 도끼 빼앗기겠다.’는 눈치를 보아서 형편이 틀렸으면 일찌감치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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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에는 제법 반반한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예복을 차리고 온 사람도 두엇 있었다. 모두 고인을 알아 온 것이 아니요, 무용가 안경화를 보아 온 사람들 같았다. 그 중에는, 고인의 슬픔을 알아 우는 사람인지, 덩달아 기분으로 우는 사람인지 울음을 삼키노라고 끅끅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경화도 제법 눈이 젖어 가지고 신식 상복이라나 공단 같은 새까만 양복으로 관 앞에 나와 향불을 놓고 절하였다. 그 뒤를 따라 한 이십 명 관 앞에 와 꿉벅거렸다. 그리고 무어라고 지껄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분향이 거의 끝난 듯하였을 때,“에헴.”하고 얼굴이 시뻘건 서 참의도 나섰다. 향을 한 움큼이나 집어 놓아 연기가 시커멓게 올려 솟더니 불이 일어났다. 후- 후- 불어 불을 끄고, 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헴…….”하더니 조사(弔辭)를 하였다.“나 서 참의일세. 알겠나? 흥…… 자네 참 호사(豪奢)야…… 호살세.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문 이런 호사를 해보겠나? 인전 안경다리 고칠 걱정두 없구…… 아무턴지…….”하는데 박희완 영감이 들어서더니,“이 사람 취했네그려.”하며 서 참의를 밀어냈다. 박희완 영감도 가슴이 답답하였다. 분향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한마디 했으면 속이 후련히 트일 것 같아서 잠깐 멈칫하고 서 있어 보았으나,“으흐윽…….”하고 울음이 먼저 터져 그만 나오고 말았다.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도 묘지까지 나갈 작정이었으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이태준, ‘복덕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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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기> | ||
이 글은 강희맹이 젊어서는 벼룩을 꺼리지 않다가 나이 들어 벼룩을 꺼리게 된 까닭을 서술하고 있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소소한 일상의 체험에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다. | ||
나는 젊었을 때 잠이 많았다. 그래서 유시(酉時)에 잠자리에 들어 인시(寅時)에 일어났다. 그때는 누우면 곧장 잠이 들어서 죽은 송장마냥 온몸의 기운이 멈추고 호흡이 희미해 누가 불러도 들리지 않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더워도 더운 줄 몰랐다.기운이 고요히 가라앉고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이 잠잠해, 제 아무리 천둥 벼락이 이마를 지나치고 물불이 앞을 막아도 두려워할 줄 몰랐다. 하물며 하찮은 벌레에 지나지 않는 벼룩 때문에 근심했겠는가! 이것은 내 기운과 감정이 잠과 더불어 한가지여서 뜻이 나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운과 감정이 잠과 한가지이기 때문에 바깥의 사물이 해를 입히지 못하고, 뜻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는 일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알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근심과 걱정이 가슴에 가득 차 정신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예전에 내게 해를 끼치지 않았던 일도 때때로 나를 덮쳐 해를 입히는 것이 너무도 심하다. 그래서 마음이 한번 고통을 느끼면 마침내 원수처럼 여겨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방어하고 교묘하게 피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한다. 기운과 감정이 온전하지 않아 뜻이 이미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사물이 나를 찾아와 해를 입히고, 온갖 사물이 내 근심과 걱정이 된다. 온전히 잠에만 빠져도 바깥의 사물이 감히 내게 해를 입히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 기운과 감정을 잘 다스리고 길러 닦는 데 있어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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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짓’은 틀린 표기이다. ‘미친 짓’으로 써야 맞다. ‘짓’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행위와 행동을 말하므로 ‘미친 짓’은 ‘우아한 부인’과 같이 ( ㉠ )와 ( ㉡ )의 자연스러운 통사적 결합이다. 따라서 ‘미친 짓’을 하나의 단어 즉, ( ㉢ )로 인정하여 ‘미친짓’으로 붙여 쓸 이유가 없다. 다만, ‘짓’이 ( ㉣ )에 연결되어 ‘눈짓’과 같이 쓰일 때에는 하나의 단어로 인정하여 붙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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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당시까지 유가 외의 유력한 사상으로 법가와 도가가 있었다. 법가는 법률에 의한 강제 지배를 국가 통치의 최상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은 전국시대의 한비(韓非)에 의해 이론화되고, 이사(李斯)에 의해 시황제(始皇帝) 치하 진(秦)나라의 통치에 실제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법에 의한 지배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국가 권력, 구체적으로는 강대한 군사력이나 용의주도하게 구축된 경찰 조직이 필요하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그것을 실현하여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적 국가를 만들었으나, 진나라는 시황제 1대로 끝나고 붕괴되었다. 법에 의한 지배를 유지하는 일은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나) 고조(高祖) 유방(劉邦)에 의해 세워진 한나라가 중앙집권적 국가의 기초를 다진 것은 제7대 무제(武帝) 시대에 와서이다. 무제는 춘추학자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때까지 제자백가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유가의 사상을 한나라의 정통 사상으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제자백가 중에서 유가가 한나라의 정통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을까?(다) 여기에서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 효제충신의 가족 도덕을 근간으로 하는 유가 사상이다. 당시 ‘이(里)’라고 불린 촌락 공동체는 생활 관습이나 가치관을 이끄는 ‘부로(父老)’와 일반 촌락민인 ‘자제(子弟)’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동체 내부의 인간관계는 흡사 가족생활이 연장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즉, 촌락 공동체에서는 자연 발생적으로 유가적인 윤리나 규범이 지켜지고 있었다. 따라서 한나라는 절대주의적인 황제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유가적 권위를 승인하고 촌락 공동체에서 행해지고 있는 윤리나 규범을 국가 차원까지 횡적으로 확대 적용하였다. 그래서 유가가 정통 지위를 얻게 되었다.(라) 한편 무위자연을 주창하는 도가는 전란으로 피폐해진 한나라 초기의 국가 정세 및 백성들의 사정에 가장 적합한 사상이었다. 문제(文帝) 시대에 도가 사상이 일세를 풍미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외부적 강제를 부정하는 도가 사상은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될 수는 없었다. 한나라가 국력을 회복하고 국가의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함에 따라 도가 사상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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翩翩黃鳥 / 雌雄相依 / 念我之獨 / 誰其與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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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句麗 : 東夷舊語 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其性氣衣服有異㉡ 東沃沮 : 其言語與句麗大同 時時小異㉢ 濊 : 其耆老舊自謂 與句麗同種 (中略) 言語法俗
大抵與句麗同 衣服有異㉣ 挹婁 : 其人形似夫餘 言語不與夫餘句麗同-『三國志』‘魏志 東夷傳’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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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吾前 其聞道也 固先( ㉠ )吾 吾從( ㉡ )師之生( ㉠ )吾後 其聞道也 亦先( ㉠ )吾 吾從( ㉡ )師之-『古文眞寶』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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兩人對酌山花開一盃一盃( ㉠ )一盃我醉欲眠卿且去明朝有意抱琴來- 李白, ‘山中與幽人對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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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논란은 단순히 외래문화나 전통문화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 ||
한국의 전통문화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보존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라 해체되어야 하는가? 한국 사회 변동 과정에서 외래문화는 전통문화에 흡수되어 토착화되는가, 아니면 전통문화 자체를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시키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오늘 한국 사회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로 나뉘어 뜨거운 논란을 빚고 있다. ( ㉠ ) 그러나 전통의 유지와 변화에 대한 견해 차이는 단순하게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로 나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한 세기 이상의 근대화 과정을 거쳐 왔으며 앞으로도 광범하고 심대한 사회 구조의 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 ㉡ ) 이런 변동 때문에 보수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전통문화의 변질을 어느 정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고, 진보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 또한 문화적 전통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 ) 근대화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끊임없는 변화를 다 같이 필요로 하며 외래문화의 수용과 토착화를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근대화에 따르는 사회 구조적 변동이 문화를 결정짓기 때문에 전통문화의 변화 문제는 보편성과 특수성이나 양자택일이라는 기준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회 구조의 변화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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