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대의 사건이 아닌 것은?
- ①유학 교육을 위해 국학을 설립하였다.
- ②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혁파하였다.
- ③김흠돌 모역 사건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하였다.
- ④당과의 무역 확대로 산동 반도에 법화원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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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산둥반도의 법화원은 9세기 장보고가 당에 거주하던 신라인을 위해 세운 사찰로, 7세기 후반 신문왕의 재위와 시기가 맞지 않는다. 국학 설립,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 김흠돌의 모역을 계기로 한 귀족 숙청은 모두 신문왕 때의 일이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국학은 신문왕 때 설치한 유교 교육기관이다. 왕권을 뒷받침할 관리를 양성하려는 정책에 해당한다.
- ②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신문왕 때 추진되었다.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하고 국가의 관료 통제를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 ③ 김흠돌의 모역은 신문왕 즉위 초에 일어났다. 신문왕은 이를 계기로 반대 귀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 ④ 법화원은 장보고가 활동한 9세기에 산둥반도에 세워졌다. 따라서 7세기 후반에 재위한 신문왕 때의 사건으로 볼 수 없다.
관련 개념
신문왕은 통일 신라의 중앙 집권 체제를 다지는 과정에서 귀족 세력을 견제하였다.
김흠돌의 모역 이후 귀족을 숙청하고,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로 관료의 경제적 기반을 국가에 종속시켰다.
국학 설립도 신문왕의 정책이다. 반면 장보고의 법화원은 신문왕보다 훨씬 뒤인 9세기 신라와 당의 교류를 보여 준다.
김흠돌의 모역 이후 귀족을 숙청하고,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로 관료의 경제적 기반을 국가에 종속시켰다.
국학 설립도 신문왕의 정책이다. 반면 장보고의 법화원은 신문왕보다 훨씬 뒤인 9세기 신라와 당의 교류를 보여 준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