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안내사 2017년 9번]

병자호란에 따른 조선의 실상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국사
  1. ①청에 대한 적대감과 복수심으로 북벌론을 주창하였다.
  2. ②세자를 비롯해 많은 신하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
  3. ③청나라에 바치는 조공품이 늘어나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해졌다.
  4. ④압록강 지역에 4군, 두만강 지역에 6진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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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4군 6진은 세종 때 여진에 대비하고 북방 영토를 개척하며 설치한 방어 거점이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실상과는 시기가 다르므로 옳지 않은 설명이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북벌론: 청에 굴복한 뒤 조선에서는 치욕을 씻고자 청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효종 때 추진되었다.
  • ② 포로: 항복 이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에 인질로 끌려갔으며, 많은 신하와 백성도 포로가 되었다.
  • ③ 조공 부담: 청에 바쳐야 할 물품과 재정 부담이 커져 이를 감당하는 백성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 ④ 4군 6진: 세종 대에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설치한 북방 방어 거점이므로 병자호란의 결과로 볼 수 없다.

관련 개념

병자호란은 1636년 청의 침입으로 시작되었고, 조선은 이듬해 삼전도에서 항복하였다.
전쟁 이후 왕자들이 인질로 끌려가고 많은 사람이 포로가 되었으며, 청과의 관계에서 조공 부담도 커졌다.
이에 청을 정벌해 치욕을 갚자는 북벌론이 대두했지만, 4군 6진 설치는 훨씬 앞선 세종 때의 북방 개척 정책이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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