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경제상황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대규모 경작의 성행
- ②타조제에서 도조제로 변화
- ③직파법에서 이앙법으로 변화
- ④해동통보의 보급과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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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해동통보는 고려 숙종 때 주조된 화폐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통 화폐가 아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평통보가 널리 쓰였으므로 화폐를 혼동한 설명이 옳지 않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광작은 농민이나 지주가 토지를 모으거나 빌려 넓은 면적을 경작하는 방식이다. 조선 후기 농업 생산력 향상과 함께 나타났으므로 당시의 경제 변화에 해당한다.
- ② 소작료를 수확량의 일정 비율로 내던 방식에서 정해진 액수를 내는 방식으로 바뀌는 사례가 늘었다. 이는 소작 관계의 변화를 보여 주므로 타당하다.
- ③ 모를 길러 논에 옮겨 심는 방식이 널리 퍼지면서 김매기 노동력이 줄고 농업 생산력이 높아졌다. 조선 후기 농법의 변화를 설명한 것이다.
- ④ 해동통보는 고려 숙종 때 만들어진 동전이다. 조선 후기 화폐 유통의 확대를 보여 주는 동전은 상평통보이므로 시대에 맞지 않는다.
관련 개념
조선 후기에는 이앙법이 확산되어 벼농사의 노동력이 절약되고 생산성이 높아졌다.
농업의 변화와 함께 광작이 나타났으며, 소작료를 정액으로 내는 도조제도 확산되었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상평통보가 널리 유통되었다. 해동통보는 고려 시대의 화폐이므로 두 동전의 시대를 구별해야 한다.
농업의 변화와 함께 광작이 나타났으며, 소작료를 정액으로 내는 도조제도 확산되었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상평통보가 널리 유통되었다. 해동통보는 고려 시대의 화폐이므로 두 동전의 시대를 구별해야 한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