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16년 특별시험 22번]

다음 농민 봉기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임술년(1862년) 2월 19일, 진주민 수만 명이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무리를 지어 진주 읍내에 모여 서리들의 가옥 수십 호를 불사르고 부수어, 그 움직임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임술록 -

국사
  1. ①농민자치조직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개혁을 주장하였다.
  2. ②경상우병사인 백낙신의 수탈에 반발하여 일으킨 것이다.
  3. ③만적 등 천민의 신분 해방 운동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4. ④홍경래의 지휘 아래 영세 농민, 중소 상인 등이 합세하였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② — 1862년 진주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는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수탈과 부당한 세금 징수에 반발한 사건이다. 전국으로 확산된 임술농민봉기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집강소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라도 각지에 설치한 자치 기구로, 진주 농민 봉기와 시기가 다르다.
  • ② 백낙신은 경상우병사로서 농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웠고, 그의 수탈이 1862년 진주 농민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 ③ 만적의 신분 해방 시도는 고려 시대의 일이다. 조선 후기의 진주 농민 봉기가 이를 촉진할 수는 없다.
  • ④ 홍경래가 이끈 봉기는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났다. 진주 농민 봉기보다 앞선 별개의 사건이다.

관련 개념

진주 농민 봉기는 1862년 삼정의 문란과 지방 관리의 수탈이 쌓인 가운데 일어났다.
이 봉기를 계기로 농민의 저항이 여러 지역으로 번져 임술농민봉기라 불린다.
조선 정부는 원인을 조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해 폐단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근본적인 개혁에는 이르지 못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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