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거란(요)과의 관계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1차 침입 때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 ②2차 침입 때 개경이 함락되어 현종이 나주로 피난하였다.
- ③2차 침입 이후에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 ④3차 침입 이후 고려는 거란과 계속 적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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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 — 거란의 재침 때 개경이 함락되자 현종은 남쪽 나주까지 피난하였다. 따라서 개경 함락과 현종의 피난을 연결한 설명이 옳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귀주 대첩은 강감찬이 거란의 세 번째 침입을 물리친 전투이므로, 첫 침입의 사건으로 볼 수 없다.
- ② 거란의 두 번째 침입 당시 개경이 함락되었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했으므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
- ③ 강동 6주는 첫 침입 때 서희의 외교 담판을 계기로 확보했으므로, 재침 이후에 얻었다는 시점이 잘못되었다.
- ④ 귀주 대첩 이후 고려와 거란은 관계를 회복하고 교류했으므로, 적대 관계가 계속되었다고 할 수 없다.
관련 개념
거란의 첫 침입은 서희의 외교 담판과 강동 6주 확보로 이어졌다.
재침 때에는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로 피난하였다.
세 번째 침입은 강감찬의 귀주 대첩으로 격퇴되었으며, 이후 양국은 국교를 회복하였다.
재침 때에는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로 피난하였다.
세 번째 침입은 강감찬의 귀주 대첩으로 격퇴되었으며, 이후 양국은 국교를 회복하였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