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 제도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잡과는 분야별로 정원이 있었다.
- ②무과는 대과와 소과의 구별이 있었다.
- ③문과 식년시 초시는 각 도의 인구 비례로 선발하였다.
- ④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시험과 부정기 시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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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 — 무과는 문과처럼 소과와 대과로 나뉘지 않았으므로 무과의 단계에 관한 설명이 옳지 않다. 무과의 정기 시험은 초시·복시·전시의 절차로 진행되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잡과 정원: 역과·의과·음양과·율과 등 각 분야에서 뽑는 인원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타당하다.
- ② 무과 단계: 소과와 대과의 구분은 문과에 해당한다. 무과는 초시·복시·전시를 거쳐 합격자를 선발했으므로 잘못된 설명이다.
- ③ 문과 초시 배정: 식년시의 지역별 선발 인원은 각 도의 인구를 고려해 배정했으므로 타당하다.
- ④ 시험 시기: 식년시는 3년마다 치른 정기 시험이고, 증광시·별시 등은 필요에 따라 시행한 부정기 시험이므로 타당하다.
관련 개념
조선의 과거에는 문과·무과·잡과가 있었고, 시험 종류에 따라 선발 방식과 정원이 달랐다.
문과에는 생원·진사를 뽑는 소과와 관리를 선발하는 대과의 구분이 있었다.
무과의 초시·복시·전시는 선발 절차를 뜻하며, 소과·대과의 구분과는 다른 개념이다.
문과에는 생원·진사를 뽑는 소과와 관리를 선발하는 대과의 구분이 있었다.
무과의 초시·복시·전시는 선발 절차를 뜻하며, 소과·대과의 구분과는 다른 개념이다.
기준 안내: 공식 최종정답 복수정답(②, ③). 서비스 채점은 ②을 사용합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최종정답.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