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말 표현으로 가장 옳은 것은?
- ①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②우리가 기름을 아껴 쓴다면 자원의 낭비도 막고 깨끗한 환경도 유지할 수 있다.
- ③시민 각자가 환경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 ④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건강과 쾌적한 교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공기 청정기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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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2012-04-07 · 20문항 · 출처: 인사혁신처 공개 기출(공공데이터포털, 이용허락 제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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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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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또한 실천적 측면 가운데 내적 측면으로 나타나는 것이 선(善), 외적 측면으로 나타나는 것이 정의(正義)이다.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념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 마련이다.ㄷ. 흔히들 숭고한 이념이나 가치로 진리․선․정의를 언급하기도 한다.ㄹ. 진리는 인간 생활의 이론적 측면으로 나타나고, 선․정의는 인간 생활의 실천적 측면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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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구제(relief)라는 단어의 프레임을 생각해 보자. 구제가 있는 곳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 받는 자가 있고, 그 고통을 없애 주는 구제자가, 다시 말해 영웅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 영웅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구제를 방해하는 악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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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더욱 익숙하다. 이 말은 ‘집은 혹은 건축은 단순히 기술적․구조적인 측면에서, 세우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짓고 밥을 짓듯이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하여 뭔가 만들어내 가는 것’이란 뜻이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건축을 가리켜 영조(營造)라 일컬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일본인들이 메이지 시대 때 만든 ‘건축’이라는 말의 뜻으로는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건축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 건물이 ( ㉠ ) 환경을 뜻한다면 건축은 그것을 포함하는 ( ㉡ ) 환경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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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는 책을 집에 놓고 학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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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갸름하다ㄴ. 개울ㄷ. 게ㄹ. 까다ㅁ.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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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순결주의자들은 국어의 혼탁을 걱정한다. 그들은 국어의 어휘가 외래어에 감염되어 있다고 개탄하고, 국어의 문체가 번역 문투에 감염되어 있다고 지탄한다. 나는 국어가 혼탁하다는 그들의 진단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혼탁을 걱정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선, 국어의 혼탁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외딴섬에 이상향을 세우고 쇄국의 빗장을 지르지 않는 한 국어의 혼탁을 막을 길은 없다.그러나 내가 국어의 혼탁을 걱정하지 않는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불순함의 옹호자이기 때문이다. 불순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의 단색 취향, 유니폼 취향을 혐오한다는 것이고, 자기와는 영 다르게 생겨 먹은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른바 토박이말과 한자어(중국산이든 한국산이든 일본산이든)와 유럽계 어휘(영국제이든 프랑스제이든)가 마구 섞인 혼탁한 한국어 속에서 자유를 숨 쉰다. 나는 한문 투로 휘어지고 일본 문투로 굽어지고 서양 문투로 닳은 한국어 문장 속에서 풍요와 세련을 느낀다. 순수한 토박이말과 토박이 문체로 이루어진 한국어 속에서라면 나는 질식할 것 같다. 언어순결주의, 즉 외국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 혐오, 북벌(北伐)․정왜(征倭)의 망상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흔히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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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회간접자본 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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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당신은 나를 흙발로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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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기침을 하자.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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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나 예수는 만천하의 대중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 주며, 그들을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다. 그러기에 길지 아니한 삶을 살았음에도, 그들의 ‘그림자’는 천고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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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수 : 그렇다고 껌 값 모아 재벌 되냐? 그래 매달 오만 원씩 적금 넣고 몇 만 원씩 곗돈 붓고 아침, 점심, 저녁 라면 먹고 숙직실에서 뭉개면 너 환갑 때쯤 돈 몇 천만 원 모을 수 있을 줄 알지? 근데 그 돈으로 집 한 채 장만 못 해. 넌 틀렸어, 임마. 야! 너 전에 이 씨 알지? 서울역 앞에서 가스 환기통 해 주던 아저씨 말이야. 그 아저씨 별명이 뭔지 아냐? 소야, 소! 정말 그 아저씨 여태 돈 모으는 재미 하나로 살았다. 일만 있으면 지방으로 산꼭대기로 어디든지 밧줄 메고 찾아갔어. 그러다가 십 몇 년 만에 그럴듯한 연립하나 장만했지. 근데 그동안 너무 못 먹고 과로했는지 몸을 버렸나 봐. 하여튼 비쩍비쩍 마르고 빌빌하기에 우리가 끌고 병원에 갔다. 간경화래! 중증이더라구. 근데 그 아저씨 겨우 장만한 집 한 채 병원비로 다 날리고 다 죽네, 어쩌네, 해서 병원에서 그냥 나왔어. 눈만 안 감았지, 몸은 장작개비처럼 비쩍 말라 가지고 죽을 때만 기다리는 거야. 야! 근데 그 아저씨 지금 뭐라는 줄 아냐? 세상을 미련하게 살았대! 알긋냐? 몸 팔아서 번 돈 다 몸으로 들어가는 거야, 자식아.- 오종우, ‘칠수와 만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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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이 처결하기를, 집안의 살림살이 전권(全權)을 마땅히 물려받아야 할 주부 고 씨는 제쳐 놓고서 한 대(代)를 껑충 건너뛰어 손주 대로 내려가게 했던 것입니다. 고 씨의 며느리 되는 박 씨 즉, 윤직원 영감의 맏손자 며느리가 시할머니의 뒤를 바로 이어서 집안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묻지 않아도 내가 주부로 들어앉아 며느리를 거느리고 집안 살림을 해 가는 어른이 되겠거니 했던 고 씨는 고만 개밥에 도토리가 되어 버리고, 도리어 시어머니 오 씨 대신에 며느리한테 또다시 시집살이를 하게쯤 된 셈평이었습니다.- 채만식, ‘태평천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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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진행과 등장인물의 대사 및 감정 등을 관객에게 설명했던 변사가 등장한 것은 1900년대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변사가 있었지만 그 역할은 미미했을뿐더러 그마저도 자막과 반주 음악이 등장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하지만 주로 동양권,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변사의 존재가 두드러졌다. 한국에서 변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극장가가 형성된 1910년부터인데, 한국 최초의 변사는 우정식으로, 단성사를 운영하던 박승필이 내세운 인물이었다. 그 후 김덕경, 서상호, 김영환, 박응면, 성동호 등이 변사로 활약했으며 당시 영화 흥행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컸었다. 단성사, 우미관, 조선 극장 등의 극장은 대개 5명 정도의 변사를 전속으로 두었으며 2명 내지 3명이 교대로 무대에 올라 한 영화를 담당하였다. 4명 내지 8명의 변사가 한 무대에 등장하여 영화의 대사를 교환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한 명의 변사가 영화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였으며, 영화가 점점 장편화되면서부터는 2명 내지 4명이 번갈아 무대에 등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변사는 악단의 행진곡을 신호로 무대에 등장하였으며, 소위 전설(前說)을 하였는데 전설이란 활동사진을 상영하기 전에 그 개요를 앞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전설이 끝나면 활동사진을 상영하고 해설을 시작하였다. 변사는 전설과 해설 이외에도 막간극을 공연하기도 했는데 당시 영화관에는 영사기가 대체로 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필름을 교체하는 시간을 이용하여 코믹한 내용을 공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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