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는/은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으며, 전기 몇 권을 지었다. 그가 쓴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 『한산기』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삼국사기』 -
- ①외교 문서를 잘 지은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 ②이두를 정리하여 한문 교육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 ③진골 신분으로 신라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려 하였다.
- ④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귀국하여 시무 개혁안을 건의하였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③ — 저술 목록과 성덕왕 때 한산주 도독을 지낸 이력으로 보아 인물은 김대문이다. 김대문은 진골 출신으로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신라인의 관점에서 기록하려 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외교 문장에 능했던 인물은 강수이다. 그는 신라의 외교 문서를 작성한 문장가로 알려져 있으며, 제시된 저술을 남긴 김대문과는 다르다.
- ② 이두를 정리한 인물은 설총이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현하는 방식을 정리해 유학 교육에 기여한 업적은 김대문의 저술 활동과 구별된다.
- ③ 진골 출신 김대문은 신라의 승려·화랑·음악·지역사를 다룬 책을 지었다. 이를 통해 신라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기록하려 한 태도를 알 수 있다.
- ④ 당의 빈공과에 급제한 뒤 귀국해 개혁안을 올린 인물은 최치원이다. 그가 건의한 시무십여조는 김대문의 활동 시기보다 뒤인 신라 말기의 일이다.
관련 개념
김대문은 통일 신라 중기의 진골 귀족이자 역사가로, 신라의 인물과 문화를 여러 저술에 담았다.
강수는 외교 문서, 설총은 이두 정리와 유학 교육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치원은 신라 말 당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시무십여조를 건의했으므로 활동 시기와 업적을 구분해야 한다.
강수는 외교 문서, 설총은 이두 정리와 유학 교육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치원은 신라 말 당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시무십여조를 건의했으므로 활동 시기와 업적을 구분해야 한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