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외관계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조선은 두만강 유역에 4군을, 압록강 중류에 6진을 설치하였다.
- ②일본과는 계해약조를 맺고 부산포, 제포, 염포에서 무역을 허용하였다.
- ③명나라와는 조공무역을 하고 책봉을 받았다.
- ④여진족에 대해서는 귀화와 조공을 적극 유도하면서 토벌정책도 병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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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① — 4군과 6진의 설치 지역을 뒤바꾼 설명이다. 세종 때 4군은 압록강 상류에, 6진은 두만강 유역에 설치하였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4군·6진의 위치가 거꾸로 제시되었다. 여진을 몰아내고 설치한 4군은 압록강 상류 지역, 6진은 두만강 유역에 있었다.
- ② 계해약조 이후 일본인의 교역을 허용한 항구가 부산포·제포·염포의 삼포였으므로 맞는 설명이다.
- ③ 명과의 관계에서는 명 황제의 책봉을 받고 사신을 보내 조공하는 외교 체제를 유지했으므로 맞다.
- ④ 조선은 여진인에게 관직과 거주 기회를 주며 귀화를 장려하는 한편, 국경을 침범할 때는 군사적으로 대응했으므로 맞다.
관련 개념
세종 때 북방 개척은 압록강 쪽의 4군과 두만강 쪽의 6진 설치로 정리된다.
대일 관계에서는 계해약조를 통해 삼포에서의 교역을 허용했다.
대명 관계는 책봉과 조공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여진에는 회유와 토벌을 함께 적용했다.
대일 관계에서는 계해약조를 통해 삼포에서의 교역을 허용했다.
대명 관계는 책봉과 조공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여진에는 회유와 토벌을 함께 적용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