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 문화 교류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유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이 수용되었다.
- ②원나라의 영향으로 상감청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 ③새롭게 들어온 다포양식으로 부석사에 무량수전을 지었다.
- ④의학과 약학 지식을 정리하여 <의방유취>를 간행하였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① — 고려 후기에는 원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안향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성리학은 이후 신진 사대부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성리학 수용은 맞다. 안향이 원에서 관련 서적을 들여왔고, 고려 후기 유학자들이 이를 연구하고 보급하였다.
- ② 상감청자의 제작은 원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상감 기법은 고려 중기에 발달했으며, 고려 후기에는 원의 영향을 받은 청자 문양 등이 나타났다.
- ③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기둥 위에 공포를 놓는 주심포 양식이 쓰였다. 고려 후기 원의 영향으로 들어온 다포 양식의 사례로 볼 수 없다.
- ④ 《의방유취》는 의학 지식을 집대성한 조선 세종 때의 편찬물이다. 고려 후기의 문화 교류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
관련 개념
고려 후기 원과의 교류를 통해 성리학이 전래되었고, 안향과 이색 등 유학자들이 이를 발전시켰다.
고려의 상감청자는 고려 중기에 이미 발달했으므로 원의 영향을 받아 제작을 시작했다는 설명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주심포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며, 《의방유취》는 조선 전기에 편찬되었다.
고려의 상감청자는 고려 중기에 이미 발달했으므로 원의 영향을 받아 제작을 시작했다는 설명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주심포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며, 《의방유취》는 조선 전기에 편찬되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