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안내사 2020년 6번]

고려후기 문화 교류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국사
  1. ①유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이 수용되었다.
  2. ②원나라의 영향으로 상감청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3. ③새롭게 들어온 다포양식으로 부석사에 무량수전을 지었다.
  4. ④의학과 약학 지식을 정리하여 <의방유취>를 간행하였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① — 고려 후기에는 원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안향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성리학은 이후 신진 사대부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성리학 수용은 맞다. 안향이 원에서 관련 서적을 들여왔고, 고려 후기 유학자들이 이를 연구하고 보급하였다.
  • ② 상감청자의 제작은 원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상감 기법은 고려 중기에 발달했으며, 고려 후기에는 원의 영향을 받은 청자 문양 등이 나타났다.
  • ③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기둥 위에 공포를 놓는 주심포 양식이 쓰였다. 고려 후기 원의 영향으로 들어온 다포 양식의 사례로 볼 수 없다.
  • ④ 《의방유취》는 의학 지식을 집대성한 조선 세종 때의 편찬물이다. 고려 후기의 문화 교류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

관련 개념

고려 후기 원과의 교류를 통해 성리학이 전래되었고, 안향과 이색 등 유학자들이 이를 발전시켰다.
고려의 상감청자는 고려 중기에 이미 발달했으므로 원의 영향을 받아 제작을 시작했다는 설명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주심포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며, 《의방유취》는 조선 전기에 편찬되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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