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14년 특별시험 12번]

밑줄 친 부분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으로 옳은 것은?

(공민왕이) 일개 승려에 불과하던 신돈에게 국정을 맡겼다. 신돈은 “오늘날 나라의 법이 무너져 나라의 토지와 약한 자들의 토지를 힘 있는 자들이 모두 빼앗고 양민을 자신의 노예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백성은 병들고 나라의 창고는 비어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 『고려사』 -

국사
  1. ①이자겸은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권력가가 되었다.
  2. ②각 지역에 독립적인 세력을 가진 호족들이 등장하였다.
  3. ③원(元)의 세력을 등에 업은 권문세족이 성장하였다.
  4. ④세도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뇌물로 관직을 사고 파는 일이 많아졌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③ — 공민왕이 신돈에게 개혁을 맡긴 직접적 배경은 원의 후원으로 성장한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과 양민의 노비화였다. 신돈은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이자겸의 권력 확대는 고려 중기의 외척 정치에 해당한다. 공민왕 때 신돈이 해결하려 한 토지·노비 문제의 직접적 배경과는 시기가 다르다.
  • ② 호족의 등장은 신라 말 지방 통제력이 약해진 상황과 관련된다. 지문은 고려 말 중앙의 유력 가문이 토지와 노동력을 장악한 폐단을 다룬다.
  • ③ 권문세족은 원 간섭기에 권력을 키우며 토지를 빼앗고 양민을 노비로 삼았다. 이들의 횡포가 공민왕이 신돈을 통해 개혁을 추진한 직접적 원인이다.
  • ④ 세도 가문의 관직 매매는 조선 후기 세도 정치기의 폐단이다. 고려 말 신돈의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와 맞지 않는다.

관련 개념

원 간섭기에 성장한 권문세족은 대규모 토지를 차지하고 양민을 노비로 삼아 국가 재정과 민생을 악화시켰다.
공민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이러한 폐단을 고치기 위해 신돈을 등용하였다.
신돈이 설치한 전민변정도감은 빼앗긴 토지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의 신분을 바로잡으려 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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