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15년 특별시험 1번]

다음 내용의 인물과 관련이 없는 것은?

그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합격하고, 이름을 날린 뒤 고국에 돌아와 자신의 뜻을 펴보려 했으나, 출세하지 못하고 외직으로 나가 태수가 되었다. 시무책(時務策) 10개 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사
  1. ①골품제라는 신분제 때문에 정치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2. ②3최(崔) 중 한 사람으로 문집 계원필경 20권을 저술하였다.
  3. ③득난이라고도 하여 진골 다음가는 일반 귀족 신분이었다.
  4. ④북원(원주)지방의 도적 집단을 규합하여 호족이 되었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④ — 지문의 인물은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귀국 후 시무책을 올린 최치원이다. 북원 일대의 도적 세력을 이끌어 호족이 된 인물은 양길이므로 최치원과 관련이 없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골품제: 최치원은 육두품 출신으로, 학식과 능력이 뛰어나도 골품제 때문에 신라 중앙 정치에서 승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 ② 3최·계원필경: 최치원은 신라 말의 문장가인 3최 가운데 한 사람이며, 당에서 지은 글을 모아 『계원필경』을 편찬했다.
  • ③ 득난: 이는 최치원이 속한 육두품의 다른 이름이다. 육두품은 진골 아래의 신분으로 관직 진출에 제약을 받았다.
  • ④ 북원 호족: 북원 지역의 도적 세력을 이끈 인물은 양길이다. 최치원의 유학·저술 및 신라 개혁 활동과는 관련이 없다.

관련 개념

최치원은 신라 말 육두품 지식인으로, 당에서 빈공과에 급제한 뒤 귀국했다.
신라의 정치적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시무책을 올렸지만, 골품제의 제약과 지배층의 반발 속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 시기 지방에서는 양길처럼 무장 세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호족이 등장했다. 중앙의 개혁을 시도한 최치원과 지방 세력을 이끈 양길을 구별해야 한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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