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15년 19번]

조선 후기 사회모습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ㄱ. 경제적으로 몰락한 양반들은 잔반이 되었다.

ㄴ. 혼인 후 남자가 여자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ㄷ. 부농층이 공명첩을 구매하여 신분 상승을 꾀하였다.

ㄹ. 서얼 출신들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기도 하였다.

국사
  1. ①ㄱ
  2. ②ㄴ, ㄷ
  3. ③ㄴ, ㄹ
  4. ④ㄱ, ㄷ, ㄹ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④ — 조선 후기에는 몰락한 양반이 잔반으로 전락하고, 부농층이 공명첩을 사서 신분 상승을 꾀했다. 정조는 서얼 출신을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했으므로 ㄱ·ㄷ·ㄹ이 옳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잔반만 고르면 부농층의 공명첩 구매와 서얼 출신의 규장각 등용을 빠뜨린다. 두 현상도 조선 후기의 신분 질서 변화를 보여 준다.
  • ② 공명첩은 옳지만 처가살이를 함께 고른 점이 틀리다. 혼인 후 남편이 아내 집에 머무는 풍습은 조선 전기에 흔했고, 후기에는 부계 중심의 혼인·거주 관행이 강화되었다.
  • ③ 검서관 등용은 옳지만 처가살이를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본 점이 틀리다. 후기에는 혼인 뒤 남편 집에서 생활하는 관행이 확산되었다.
  • ④ 몰락 양반의 잔반화, 부농층의 공명첩 구매, 서얼 출신의 규장각 검서관 등용은 모두 조선 후기에 나타난 현상이므로 이 조합이 맞다.

관련 개념

조선 후기에는 농업 생산과 상업 활동을 바탕으로 재산을 모은 부농층이 성장했다.
이들은 공명첩 구매 등을 통해 양반 신분을 얻으려 했고, 경제적으로 몰락한 양반은 잔반으로 불렸다.
정조는 서얼 출신인 이덕무·박제가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했다. 혼인 뒤 처가에서 사는 풍습은 조선 전기의 특징으로 구분한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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