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붕당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과 이조 전랑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하였다.
- ②효종의 적장자 자격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예송논쟁이 전개되었다.
- ③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강경파를 등용하여 서로 견제하게 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 ④사람과 짐승의 본성이 같은지 여부를 둘러싸고 노론이 낙론과 호론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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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③ — 영조의 탕평책은 붕당의 대립을 완화하려고 각 당파의 온건한 인물을 고르게 등용하는 완론 탕평이었다. 강경파를 등용해 상호 견제시켰다는 설명이 잘못되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동인·서인 분화: 사림은 척신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정리와 이조 전랑 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갈라졌다.
- ② 예송논쟁: 효종의 왕위 계승상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였다.
- ③ 영조의 탕평책: 영조는 각 붕당의 온건파를 중심으로 등용하였다. 강경파를 기용해 서로 견제시켰다는 설명은 실제 정책 방향과 어긋난다.
- ④ 낙론·호론: 노론 내부에서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지를 놓고 견해가 갈렸다. 낙론은 같다고, 호론은 다르다고 보았다.
관련 개념
붕당은 사림의 정치적 견해와 인사 갈등 속에서 형성되었고, 이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예송논쟁은 왕실의 상례를 둘러싼 논쟁이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대립이기도 했다.
영조의 완론 탕평은 온건파의 협력을 중시하며 격한 붕당 대립을 줄이려는 정책이었다.
예송논쟁은 왕실의 상례를 둘러싼 논쟁이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대립이기도 했다.
영조의 완론 탕평은 온건파의 협력을 중시하며 격한 붕당 대립을 줄이려는 정책이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