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20년 11번]

고려시대 사회상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ㄱ. 태어난 차례대로 호적에 기재하여 남녀차별을 하지 않았다.

ㄴ. 사위와 외손자까지 음서의 혜택이 있었다.

ㄷ. 혼인 후에 곧바로 남자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ㄹ. 동족마을이 만들어지고 문중을 중심으로 서원과 사우가 세워졌다.

국사
  1. ①ㄱ, ㄴ
  2. ②ㄱ, ㄹ
  3. ③ㄴ, ㄷ
  4. ④ㄷ, ㄹ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① — 고려에서는 자녀를 성별보다 출생 순서에 따라 호적에 적었고, 음서의 적용 범위에 사위와 외손자도 포함되었다. 혼인 뒤 처가에서 지내는 관행이 일반적이었으며 동족마을과 문중 중심의 서원·사우는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출생 순서와 음서는 모두 고려의 특징이다. 호적에 아들과 딸을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했고, 음서의 혜택은 부계 자손뿐 아니라 사위와 외손자에게도 미쳤다.
  • ② 출생 순서에 따른 기록은 맞지만, 동족마을과 문중 중심의 서원·사우는 조선 후기에 성리학적 부계 질서가 강화되면서 나타난 모습이므로 함께 고를 수 없다.
  • ③ 사위·외손자에게 음서가 적용된 것은 맞다. 다만 고려에는 혼인 후 여성이 친정에 머물고 남성이 처가를 오가는 생활 방식이 널리 나타나, 곧바로 남편 집에서 사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 ④ 남편 집에서 곧바로 생활했다는 설명은 고려의 혼인 관행과 맞지 않는다. 동족마을의 형성과 문중 중심 서원·사우 건립도 조선 후기의 사회상이다.

관련 개념

고려의 가족 제도에서는 아들과 딸의 상속권이 비교적 균등했고, 제사도 아들과 딸이 돌아가며 맡는 경우가 있었다.
호적의 출생 순서 기록과 사위·외손자에게까지 미친 음서는 당시 여성과 외가의 지위를 보여 준다.
혼인 뒤 처가에 머무는 관행은 고려의 특징이며, 부계 문중을 중심으로 한 동족마을과 서원·사우는 조선 후기에 두드러졌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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