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2020년 23번]

병자호란의 결과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국사
  1. ①청나라에 많은 양의 조공을 바쳤다.
  2. ②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 운동이 대두되었다.
  3. ③4군과 6진을 설치하여 북방 영토를 확장하였다.
  4. ④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고 세자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선지를 골라 바로 채점해 보세요.

정답 ③ — 4군 6진은 세종 때 여진을 견제하며 압록강·두만강 방면에 설치한 방어 거점이다. 병자호란 이후의 변화가 아니므로 옳지 않은 설명이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조공 부담: 조선은 항복 이후 청에 정기적으로 예물을 보내고 각종 물자를 요구받아 재정적 부담을 졌다.
  • ② 북벌론: 청에 굴복한 치욕을 씻자는 여론이 커졌고, 효종 때 청을 공격하려는 구상이 추진되었다.
  • ③ 4군 6진: 세종 때 김종서와 최윤덕 등이 북방 개척을 이끌며 설치한 것으로, 병자호란보다 약 200년 앞선 일이다.
  • ④ 군신관계와 포로: 삼전도에서 항복한 뒤 조선은 청의 우위를 인정했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청으로 끌려갔다.

관련 개념

병자호란은 1636년 청의 침입으로 시작되어 이듬해 인조의 삼전도 항복으로 끝났다.
전쟁 뒤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끊고 청을 상국으로 받들었으며, 왕자와 신하를 인질로 보내고 조공을 부담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북벌론이 일어났지만, 4군 6진 설치는 훨씬 앞선 세종 대의 북방 개척 정책에 속한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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