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서옥제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다.
- ②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았다.
- ③낙랑군과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다.
- ④지배자를 상가, 고추가 등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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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③ — 옥저는 함경도 동해안 일대에 자리한 여러 읍락의 집합으로, 한때 낙랑군의 영향 아래 있다가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다. 고구려에 특산물을 바치기도 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서옥제는 고구려의 혼인 풍속이다. 신랑이 신부 집에 마련된 서옥에서 지내는 방식으로, 옥저의 민며느리제와 구별된다.
- ② 절도범을 노비로 삼는 법은 부여의 법률로 전해진다. 옥저의 특징적인 사회 관습으로 보기 어렵다.
- ③ 낙랑군의 영향과 뒤이은 고구려의 지배는 옥저의 역사적 처지를 설명한다. 고구려에 공납을 바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 ④ 상가·고추가는 고구려의 지배층 칭호다. 옥저는 왕이 없이 각 읍락의 읍군이나 삼로가 다스렸다.
관련 개념
옥저는 동해안 지역에 형성되었으며 강한 왕권을 갖춘 국가로 성장하지 못했다.
혼인 풍속인 민며느리제는 어린 여자를 장래 남편의 집에서 길러 혼인시키는 방식이었다.
가족의 뼈를 한곳에 모아 장사하는 골장제도 옥저를 구별할 때 자주 쓰이는 특징이다.
혼인 풍속인 민며느리제는 어린 여자를 장래 남편의 집에서 길러 혼인시키는 방식이었다.
가족의 뼈를 한곳에 모아 장사하는 골장제도 옥저를 구별할 때 자주 쓰이는 특징이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