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자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조광조는 현량과를 실시해 인재를 등용하였다.
- ②이황은 성학십도, 주자서절요 등의 저서를 남겼다.
- ③박제가는 북학의를 저술하여 균전론을 주장하였다.
- ④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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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지방관의 자세와 행정을 다룬 『목민심서』와 국가 제도 개혁을 논한 『경세유표』를 저술했다. 다른 인물들은 실학자가 아니거나 저술과 주장 사이의 연결이 잘못되었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조광조의 현량과 실시는 사실이지만, 그는 조선 중기의 사림 정치가로 조선 후기 실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 ② 이황의 저술에 관한 내용은 사실이지만, 그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조선 후기 실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 ③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청의 문물 수용과 상공업 진흥을 강조했다. 균전론을 그의 핵심 주장으로 연결한 부분이 잘못되었다.
- ④ 정약용은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되며,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통해 지방 행정과 국가 제도의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관련 개념
조선 후기 실학은 현실의 문제를 살피고 사회·경제 제도의 개선책을 찾으려는 학문 경향이다.
박제가는 북학파로서 청의 선진 문물 수용과 유통·소비의 활성화를 중시했다.
정약용은 지방관의 실무 지침과 국가 제도 개혁안을 여러 저술에 담아 실학을 집대성했다.
박제가는 북학파로서 청의 선진 문물 수용과 유통·소비의 활성화를 중시했다.
정약용은 지방관의 실무 지침과 국가 제도 개혁안을 여러 저술에 담아 실학을 집대성했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