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남하정책과 관련이 없는 사실은?
- ①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 ②5세기 중반 충북 중원군에 고구려비가 건립되었다.
- ③신라와 백제는 동맹을 맺었다.
- ④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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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 관산성 전투는 신라와 백제 사이의 충돌로 성왕이 전사한 사건이다. 고구려의 남하에 대응해 맺은 나제동맹이 무너진 뒤 벌어졌으므로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직접 관련된 사실로 보기 어렵다.
선지별 오답 이유
- ① 문주왕·웅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가 한성을 잃자, 뒤를 이은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했다. 고구려의 남하가 낳은 결과다.
- ② 충주 고구려비: 고구려가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충주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 주는 유적이므로 남하와 관련된다.
- ③ 나제동맹: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에 공동으로 대응하려고 맺은 동맹이다.
- ④ 관산성·성왕: 백제가 신라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으려다 벌어진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했다. 전투의 직접 상대는 고구려가 아닌 신라였다.
관련 개념
장수왕은 평양 천도 이후 남진을 추진했고, 한성을 공격해 백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백제의 웅진 천도와 충주 지역의 고구려 유적은 남하정책의 전개와 결과를 보여 준다.
나제동맹은 남하에 맞선 공동 대응이었지만, 관산성 전투는 이후 신라와 백제의 한강 유역 쟁탈 과정에서 벌어졌다.
백제의 웅진 천도와 충주 지역의 고구려 유적은 남하정책의 전개와 결과를 보여 준다.
나제동맹은 남하에 맞선 공동 대응이었지만, 관산성 전투는 이후 신라와 백제의 한강 유역 쟁탈 과정에서 벌어졌다.
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Q-Net 자료실 · 공공누리 제1유형 · AI 해설 · 자동 검증 통과